어떤 조직이든 새로운 기술이나 패러다임을 도입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잘나가는 선진 조직을 벤치마킹하는 '현장 학습'입니다. 19세기 말, 서구 열강의 거센 파도 앞에서도 조선과 일본은 각각 대규모 국외 사절단을 파견했습니다. 바로 일본의 '이와쿠라 사절단'과 조선의 '영선사(청나라)', '보빙사(미국)'입니다.
하지만 이 두 나라의 벤치마킹은 시작 단계의 목적부터 사후 활용까지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이 격차가 결국 두 나라의 근대화 성패를 가르는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내가 직접 이 프로젝트들을 이끄는 기획자라고 생각하고 그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1. 예산과 인력 구성의 규모: 올인은 언제 해야 하는가
먼저 일본의 이와쿠라 사절단을 보면 그 규모와 무게감에 압도당합니다. 1871년 파견된 이 사절단은 우대신 이와쿠라 토모미를 비롯해 오쿠보 도시미치, 기도 다카요시, 이토 히로부미 등 당시 메이지 정부의 '실세 중의 실세'들이 직접 몸을 실었습니다. 전체 인원은 유학생을 포함해 100여 명에 달했고, 이들의 1년 10개월간의 여정에 투입된 예산은 메이지 정부 한 해 국가 예산의 약 2%가 넘는 어마어마한 수준이었습니다.
반면 조선의 사절단은 어땠을까요? 1881년 청나라로 간 영선사는 김윤식을 영선사로 하여 학도와 장인 38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883년 미국으로 간 보빙사는 민영익을 전권대신으로 하여 11명이 파견되었습니다. 규모 자체도 작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들이 현장에서 체득한 지식을 국가 정책에 곧바로 이식할 만큼의 강력한 '정치적 실권'을 쥐고 있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기획 실무자만 보내는 벤치마킹과, 의사결정권자가 직접 가서 판을 흔드는 리더십의 차이였습니다.
2. 관찰의 범위: 기술만 배울 것인가, 시스템을 배울 것인가
당시 조선의 영선사가 청나라에 파견된 핵심 목적은 '무기 제조 기술'과 '군사 훈련법' 습득이었습니다. 서양의 대포를 어떻게 만드는지, 총을 어떻게 쏘는지만 기계적으로 배우려 했던 것입니다. 이는 동도서기(東道西器, 동양의 도를 지키고 서양의 기술만 받아들인다)라는 사상적 한계에 갇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술은 그것을 지탱하는 사회적 시스템, 즉 법과 제도, 경제 체제와 유기적으로 결합해 움직입니다. 일본의 이와쿠라 사절단은 처음에는 불평등 조약 개정을 목적으로 떠났지만, 서구의 압도적인 국력을 직접 대면한 뒤 목표를 즉시 수정했습니다. 그들은 철도와 공장만 본 것이 아닙니다.
영국의 공장을 보고 자본주의의 흐름을 분석했고, 미국의 헌법과 학교 제도를 보며 인재 양성의 기초를 배웠으며, 독일의 비스마르크를 만나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는 현실주의 외교의 본질을 배웠습니다. 기술의 본체인 '소프트웨어(제도와 철학)'를 통째로 이식해야만 '하드웨어(군사와 산업)'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입니다.
3. 귀국 후 결과물의 공유와 내재화
많은 벤치마킹 프로젝트가 보고서 제출용으로 끝나듯, 조선의 사절단 활동 역시 지속성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청나라로 간 영선사 일행은 재정 부족과 이듬해 터진 임오군란으로 인해 공부를 채 마치지도 못하고 1년 만에 조기 귀국해야 했습니다. 미국으로 간 보빙사 역시 귀국 후 보고를 마쳤으나, 이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적 마스터플랜을 세울 재정적 여유도, 정교한 공유 시스템도 없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의 이와쿠라 사절단은 귀국 후 5권 100책에 달하는 방대한 기록물인 '미구회람실기(米歐回覽實記)'를 발간했습니다. 사절단이 보고 들은 내용을 공무원과 지식인 사회 전체가 공부할 수 있도록 매뉴얼화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절단에 참가했던 실세들이 정부 요직에 복귀하여 농업, 상업, 사법, 군사를 각 분야별로 뜯어고치는 실무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현장 학습이 단순한 구경에서 끝나지 않고 국가의 표준 매뉴얼로 내재화된 모범적인 사례입니다.
4. 현대 비즈니스에 던지는 시사점: 겉핥기식 벤치마킹을 멈춰라
우리는 종종 경쟁사나 선진 기업을 모방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세련된 UI, 화려한 마케팅 문구, 최신 협업 툴(Tool) 같은 하드웨어만 베끼는 조직은 결국 도태됩니다.
중요한 것은 "왜 저 회사는 저런 구조를 선택했는가?", "그 기술을 뒷받침하는 조직 문화와 보상 체계는 어떻게 굴러가는가?"와 같은 보이지 않는 시스템을 분석하는 눈입니다. 조선의 영선사가 총포 기술을 배우느라 땀을 흘릴 때, 일본의 사절단이 서구의 헌법 조항과 은행 법률을 밤새워 번역했던 그 본질적인 차이를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핵심 요약
일본의 이와쿠라 사절단은 국가 예산의 2%를 투입해 핵심 의사결정권자들이 서구의 제도, 금융, 교육 등 사회 전반의 시스템(소프트웨어)을 통째로 학습했습니다.
조선의 영선사와 보빙사는 소규모 예산과 실무진 위주로 파견되어, 서양의 기술과 무기(하드웨어)라는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집착하는 한계를 보였습니다.
벤치마킹의 성패는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배운 지식을 국가나 조직 전체의 표준 매뉴얼로 공유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시스템 내재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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