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을 흘리며 다 죽어가는 노인 연기를 펼쳐 조상(曹爽) 일파를 완벽하게 속여넘긴 사마의. 그의 지독한 연기는 위나라 역사, 아니 삼국지 전체의 판도를 바꾼 거대한 정변의 완벽한 복선이었습니다. 249년 정월, 사마의가 무려 10년 동안 숨을 죽이며 기다려온 단 한 번의 타이밍이 마침내 찾아옵니다.
당시 황제 조방과 권력을 독점하던 조상 형제는 선황 조예의 무덤인 고평릉(高平陵)으로 성묘를 떠났습니다. 조상의 심복들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낙양에 군사를 남겨두어야 한다고 간언했지만, 이미 사마의를 '시체나 다름없는 노인'으로 생각하고 방심했던 조상은 모든 경비 병력과 측근들을 대동하고 성을 비웠습니다. 호랑이가 없는 굴에 드디어 사마의의 시간이 시작된 것입니다.
[1. 번개 같은 거사, 침대에서 일어난 호랑이]
조상 일파가 낙양 성문을 나서자마자, 침대에서 헐떡이던 70세의 노인 사마의는 무서운 기세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의 눈에는 흐릿함 대신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매서운 빛이 감돌았습니다.
사마의는 미리 은밀하게 키워둔 사가(私家)의 정예 병력인 '사사(私士) 3,000명'을 움직였습니다. 이들은 조상의 감시를 피해 낙양 곳곳에 숨어 지내던 비밀 결사대였습니다. 사마의의 맏아들 사마사는 이 군대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하여 낙양의 주요 관청과 무기고를 순식간에 장악했습니다.
그다음 사마의가 향한 곳은 황실의 최고 어른인 곽태후(郭太后)의 처소였습니다. 사마의는 곽태후를 압박하고 설득하여 "조상 형제가 권력을 남용하고 나라를 망치고 있으니 이들의 관직을 박탈한다"는 합법적인 조서를 받아냅니다. 10년 동안 무력하게 엎드려 있었지만, 단 하루 만에 낙양성 전체를 완벽하게 통제 하에 둔 것입니다.
[2. 사마의의 마지막 심리전, 적의 나약함을 찌르다]
낙양이 점령되었다는 소식이 고평릉에 있던 조상에게 전해지자, 조상 일파는 멘붕(공황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때 조상의 곁에 있던 환범(桓範)이라는 똑똑한 참모가 날카로운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황제 조방을 모시고 허창(許昌)으로 이동하여, 전국에 있는 군대를 소집해 사마의를 반역자로 몰아 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조상이 이 조언을 따랐다면 삼국지의 역사는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릅니다. 황제를 쥔 자가 정통성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사마의는 조상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조상은 권력을 탐했지만 대담함이 없고, 겁이 많으며 결단력이 부족한 인물이었습니다. 사마의는 지체 없이 조상에게 사신을 보내 달콤한 제안을 건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너희 형제의 관직을 거두는 것뿐이다. 순순히 항복하고 낙양으로 돌아온다면, 너희의 재산과 작위를 보장하고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다."
환범은 사마의의 말을 믿지 말라고 가슴을 치며 말렸지만, 겁에 질린 조상은 결국 사마의의 덫에 걸려들고 맙니다. 조상은 "나는 항복하더라도 부유한 가문의 주인으로 살 수 있겠지"라며 스스로 무기를 내려놓았습니다. 사마의가 수십 년간 다져온 정치가로서의 안목이, 조상의 나약한 심리를 완벽하게 관통한 순간이었습니다.
[3. 약속은 없다, 철저하고 무자비한 사후 처리]
낙양으로 돌아온 조상 형제를 기다린 것은 따뜻한 은퇴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사마의는 조상이 항복하자마자 태도를 돌변했습니다. 조상 일파에게 역모 혐의를 씌우고, 조상의 삼족(三族)은 물론이고 그와 연루된 측근들의 가문까지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몰살했습니다. 이때 처형된 사람만 수천 명에 달했다고 전해집니다.
흔히 사마의가 약속을 어긴 비열한 배신자라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권력의 생리를 생각하면 사마의에게는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만약 조상을 살려두었다면, 언제든 조씨 종친 세력이 다시 뭉쳐 사마씨 가문의 목을 겨누었을 것입니다.
사마의는 십수 년 동안 조씨 가문에게 받았던 멸시와 압박, 목숨의 위협을 단 하루의 정변과 처절한 숙청으로 되갚아주었습니다. 이 고평릉사변을 기점으로 위나라의 실질적인 주인은 조씨에서 사마씨로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조조가 두려워했던 '말구유를 먹는 세 마리의 말'의 예언이 마침내 현실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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